마키아벨리즘의 원형
책읽기 | 2010/02/05 15:03
군주론
Il Principe
Niccolò Machiavelli 지음(1532), 강정인, 김경희 옮김(2008)
까치글방
Il Principe
Niccolò Machiavelli 지음(1532), 강정인, 김경희 옮김(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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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은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한 용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모술수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사고를 의미하는 용어로, 바로 이 책, 군주론(Il Principe) 등이 그 유래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플라톤의 저작 <국가(Politeia)>의 대척점에 서 있음을 지적한다. <국가>는 '선의 이데아'에 대해 논하고 '철인정치'를 통해 이를 현실 정치에 구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읽은지 수 년이 지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반면 <군주론>은 철학/도덕/종교 등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을 구분하며, 정치적 영역에서의 비르투(virtu, '덕'), 즉 군주의 비르투와 철학/도덕/종교적 영역에서의 덕, 혹 개인의 비르투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사람들이 덕목에 충실하지 않고, 악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 이는 아담 스미스 이래 현대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 군주는 철학/도덕/종교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는 덕을 따르는 것이 안정적인 통치 기법임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속군주제를 예로 들자면 무리없이 왕세자가 왕으로부터 권력을 세습받았을 경우, 공화정을 예로 들자면 인민의 지지 위에 선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권력이 이양되어 그 권력이 세속군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지받고 있는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에는 군주의 권력이 안정적이므로 기존의 덕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
반면 '어떤' 상황에서는 이런 덕목이 군주로서의 비르투와 상충됨을 지적했는데, 새로운 군주국을 만들었다거나, 전쟁 상황이라거나, 권력이 충실히 지지받고 있지 못한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군주론>은 이때 자비, 후덕함 등과 같은 철학/도덕/종교적 덕목이 군주의 비르투로서는 부적합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위기상황을 초래한 사람을 자비롭게 용서한다거나 후덕하게 몇몇 측근들에게 국고를 나누어주는 등의 행위는 군주로서는 부적절한 것이다. <군주론>은 한니발의 잔인함을 군주로서의 비르투로 언급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 잔인함이 군대의 기강을 확고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18장을 보면, 군주는 철학/도덕/종교적 덕목을 갖춘 것처럼 외양을 꾸미되, 필요할 때는 이와 정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는 군주의 거짓말을 용인하는 듯한 논술이다. 사보나롤라의 예를 들어 강력한 군대, 특히 용병이나 원군이 아닌 국가의 인민들로 구성된 군대가 강력한 국가의 필수조건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즘으로 불리는 사상이 바로 이러한 견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이 오로지 권모술수만을 역설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역시 18장에서 그는 '필요할 경우'에는 과감하게 악행을 저지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를 붙인다. 힘을 내세운 동물같은 방식을 역설함하지만 법을 통한 인간의 방식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함을 전제한다. 또한 그는 귀족은 국가를 공고히 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인민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관점도 여러 차례 피력한다. 20장에서는 파벌 조장 등의 권모술수나 요새 건축 등과 같은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 군주에게 오히려 이롭지 않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군주가 자애로움과 잔혹함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국민에게 관대로우면서도 군대에 경멸당하지 말야아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위한 좋은 전략적 장치로 의회를 들고 있다. 법원의 존재를 통해 군주로서의 비르투를 실현할 수 있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이런 여러 점에서 살펴볼 때, 그가 말한 군주로서의 비르투란 단순히 군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권모술수가 아니라, 다양한 파고 속에서 국가라는 배를 침몰시키지 않기 위한, 철학적이고 도덕적이고 종교적 차원과 '다른' 차원의 여러 '장치'를 의미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군주의 다양한 전략과 사회적 장치는 자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나아가 그 구성원인 인민(People)의 삶을 위할 때에만 용납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한국의 독재자들이 시민들에게 '간첩'의 누명을 씌워 그들을 살해했던 전례가 과연 <군주론>이 역설했던 군주로서의 비르투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상당히 의문스러우며,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군주론>은 '강한 군주제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한 군주가 되기 위해 정치적 비르투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이 단순히 권력자를 위한 권모술수 지침서로 읽힐 여지가 있는 것이 바로 이 까닭인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은 통일 이탈리아라는 '민족국가의 수립'을 위해 한 군주(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책이다. 따라서 강한 군주제란 실상 강한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목적의 이면이며, 그의 다른 저작이나 인민을 중시하는 그의 견해를 살펴 볼 때 그의 가장 궁극적 이상향은 '공화정'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사실 갑자기 <군주론>을 읽게 된 까닭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화두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을 보며 마키아벨리즘의 원형을 찾아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다. <군주론>을 다 읽고 나니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사용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단어고, 여러 함의가 담겨있고, 또 무척 무거운 단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게감이 없는 단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만, 이 단어는 정말 타이핑하는 것 자체가 무척 무거운 단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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