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을 맞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기념하는 문집 출판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200쇄 인쇄의 기록을 세운 한국 문단의 스테디셀러입니다.
제가 난쏘공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무슨 계기로 읽었는지는 잘 기억도 안 납니다만, 어디서 빌려 본 것도 아니고 없는 용돈을 쪼개 서점에서 사다 읽었었죠. 강렬했습니다. 몇 번을 더 읽었습니다. 신애 아줌마가 칼을 꺼내든 순간부터, 가시고기들이 그물로 몰려든 순간까지, 모든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을 보며, 문학평론가들은 '팬지꽃을 폐수에 빠뜨리는' 상징과 두 세계의 미학적 대립에 주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소설로부터 제가 읽은 것은 자본주의가 뒤집어쓴 모순, 그 무궁무진한 폭력성이었습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 있고(<칼날>), 도시화의 몰인격성이 있으며(<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노동자의 기계화가 있습니다(<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난쟁이는 공사 하나를 수주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업자들에게 '뒤지게' 얻어터집니다. 추한 달동네에 아름다운 새 아파트를 짓겠답시고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갈아엎어 버립니다. 경영자는 노동자에게 '일만 하게 만드는 약'을 주사한다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실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약한 나에게, 경제적 약자에 선 나에게 자본주의란 여전히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정말 자본주의가 그런 것입니까?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담 스미스는 그 역사적 저작 <국부론>에서, 소위 수요-공급 법칙의 위대함을 설파함과 동시에 그것이 현실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정부는 소위 '경제학적 효율성'을 위해 부자들의 편을 드느라 바쁘고, 서민들은 부자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생명 그 자체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상인들은 이익 단체를 만들어 누군가 자신의 이권을 침해하는 것에 날선 반응을 보입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꿈이란 별 게 아니었습니다.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빵까지 빼앗기지 않기를 바랬을 뿐이죠.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꿈은 정부와 부자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꿈으로만 남고 말았습니다. 그 비참한 지옥에서, 도덕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던 한 철학자가 현실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길고 긴 고민 끝에, 오늘날의 표현을 빌자면 진정한 '시장 경제'가 바로 이들을 구할 수 있는 이성적인 해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자유가 있었고, 기회의 평등이 있었으며, 도덕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고,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트랙이 그려집니다. 시장 앞에서 '귀한 피'는 없습니다. 상인들의 이익 단체는 무너지고, 가난한 사람도 상권에 들어와 정정당당하게 장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시장 경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학의 아버지'가 걱정했던 그 모든 자본주의의 악행(惡行)을 그대로 실천하는 정부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대통령은 스스로를 '시장주의자' '시장 경제의 적자' 경제대통령' 따위로 표현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대통령은 약자들의 시위, 데모를 정치, 윤리, 도덕, 철학 같은 문제와 연결짓지 않습니다. '시장의 자유와 평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시위와 데모를 벌인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대신 '이 시위로 인해 얼마나 금전적 손해를 보았는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해선 안 되는 투쟁과, 마땅히 보장해야 할 투쟁을 구분할 줄 모릅니다. 시장 경제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시장과 수요-공급의 법칙을 믿는 자본주의자라면 응당 추구해야 할 '시장 친화적'이라는 가치 대신, '비지니스 후뤤들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사이비 경제관을 들이밉니다.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시장을 구성하는 여러 축 중 한 구석에 대통령이 스스로 무게중심을 실어줌으로써 시장의 정상적인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에 그가 얼마나 거시/미시경제에 무지한지가 그대로 드러나지요.
1970년대의 '교도자본주의' 시대를 넘어, 우리는 좀 더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뒤집어쓴 오명, 그 폭력성은 아직도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자본주의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위에서 더 많은 돈을 벌 것인가, 승리자가 될 것인가 하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근간에 무엇이 있었는지, 왜 시장에 대한 이론이 만들어지고 왜 그것이 오늘날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철학적인 고민에 대해서 말입니다.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이명박 같은 천박한 인물을 자본주의의 기수로 착각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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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명박의 등장은 한국자본주의의 퇴화를 상징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