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幼稚)와 저열(低劣)
무거운 이야기/정치 | 2006/04/18 18:02
건너오는 글 :
부끄러운 고려대
운동권을 싫어했다. 운동권 치들이 가진 모호한 선민의식이 싫었다. 고종석 을 오롯이 본으로 삼아 치열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고자 했던 나에게, 참여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비양심의 축으로 몰아넣는 듯한 그들의 눈빛과 언행은 그야말로 상극(相克)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 그 뿐이던가. 그들은 행사가 있을 때면 회장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관계자들을 반(半) 강제적으로 참가시켰고, 특히 기획단이나 자봉단은 2~3주씩 학습권을 빼앗겨가며 울며 겨자먹기로 행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이런 운동권은 흔히 쓰는 말로 유치(幼稚)하다. 그 앎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가에 관계 없이, 소수자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진정한가에 상관 없이 그저 유치하다.
이처럼 운동권을 싫어했으므로 - PD계 총학 하의 비권 단대 학생회 일원이자, 전한련* 한 구석에서 "기존 운동권의 방식엔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소수파, 필연적으로 내 포지션도 그렇게 정립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운동권을 싫어한다. 술 한 잔 기울이고, 또 맑스와 의료 개혁에 대한 유치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모두 더없이 선한 사람들임을 느꼈지만, 운동권의 방식에만은 결국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운동권은 싫어한다.
그렇다면 탈 운동권과 탈 정치를 외치며 학생회의 중심에 선 지금의 학생들은 어떨까. 굳이 그 수식어를 찾는다면, 저열(低劣)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질이 낮고 용렬하다.
탈 운동권, 탈 정치에 굳이 "~주의"란 말을 가져다붙인다면, 개인주의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무언가 어색한 개인주의다. 기성 집단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개인주의와 닮았지만, 그 외에 개인주의가 가져야 하는 모든 속성을 깡그리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열한 것이다.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의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집단에 대해서는 비협조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집단이 가지는 모든 비이성적인 측면에 대해 비협조와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대신 자율적인 공동체, 곧 소수의 위원회 를 지향한다. 쉽게 말하자면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믿음쌓기니 뭐니 하며 후배에게 단체 기합을 주거나, 신입사원들에게 해병대 훈련 따위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기성 집단의 방식은 집단의 통일성과 단합을 위해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사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자율적인 공동체인 소수의 위원회는 서로 뜻과 의사가 일치하는 개인과 개인이 만나 자유롭게 만들고, 자유롭게 해체한다. 국가, 기업, 학교 등과 같은 타율적 상하관계에 의해 묶이지 않고 최대한 동등한 관계 하에 묶인다. 가수의 팬클럽, NGO, 자원봉사 모임 등이 소수의 위원회가 될 수 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이 갑자기 충동적으로 학교 청소를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일 - 따위도 소수의 위원회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유가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저 선배가 이끌어주는대로 따라가기만 했던 과거의 집단과 달리, 개인주의자들의 자율적 공동체, 곧 "소수의 위원회"는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어떤 집단을 만들어갈 것인가, 어떤 모습이 보다 이상적일 것인가, 이 모든 문제의 답이 개인의 고민과 행동 하에 만들어진다. "누군가 학교를 청소하고 있는데, 나도 거기에 동참할 것인가?", "NGO의 방식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식과 얼마나 유사한가?" 많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모두 자신이 답을 내리고 그 답에 따라 스스로 행동해야만 한다.
그래서 개인주의자들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테크노스트럭쳐의 모순과 민족주의의 허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가치와 경제적 구조에 대한 다방면의 고민이 개인주의자에겐 선행되어야만 한다. 만일 개인주의자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디어와 교육의 왜곡 에 끌려다니는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이렇다면 이런 줄 알고, 선생이 저렇다면 저런 줄 아는 바보가 되는 셈이다. 한국 개인주의를 대표하는 고종석씨가 "좌파를 부끄럽게 하는 우파"라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파 지식인 강준만씨는 다작과 더불어 다독으로도 유명하다. 사회학, 경제학, 그 모든 것들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답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탈 운동권은?
끈기있는 배움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치열한 고민이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연합. 한총련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 한의과대학 회장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가 주요 골격이며, 민족의학 사수 및 국민 건강권 확보를 논의하는 학생 단체이다. 전국의 모든 한의과대학 학생들을 그 원(員)으로 하며, 보건의료계열 학생단체 중 가장 강력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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