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우드스톡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조울증(Manic Depression)을 연주했다. 같은 시기 바다 건너 일본에선 먼 훗날 무라카미 류라 불리게 될 청년이 쓰레기같은 선생들에 맞서 즐겁게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대학생들은 거대한 스크럼을 짜고 꽃으로 만든 폭탄을 던졌으며, 노래와 축제를 통해 세상을 전복시키려 했다. 전쟁과 무기 대신 평화와 사랑을, 허울과 가식 대신 자유와 영혼을 되찾으려 노래를 했다.

70년대가 왔다. 한국에는 먼 훗날 7080 세대라 불리게 될 청년들이 대학교에 들어왔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라는 파시스트 지도자의 지배를 받는 암흑의 나라였고, 대학생들은 그가 손에 쥔 총과 칼에 맞서 싸워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했다. 부마가 일어섰고, 박정희는 죽었다. 그러나 파시즘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비로소 광주가 일어섰다. 그저 사람으로의 권리를 지킬 수 있기를, 그리고 총칼 앞에 목숨 하나 부지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광주가 일어섰다. 대학생들은 전단을 만들고, 광주의 정신과 민주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들은 파시즘의 총칼에 죽어 망월에 묻혔다. 그러나 정신은 그 어딘가에 영원히 산다.

2000년대다. 그 십 수년동안 꿈으로만 그려오던 21세기가 왔다. 이제 대학생들은 더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60년대보다 덜 정열적이며, 7080보다 덜 참여적이다. 그들은 축제를 열지도 않고, 꽃을 던지지도 않으며,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지도 않는다. 기타를 연주하지도 않고 다같이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더욱이 그들은 세상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며, 모순에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단 한 번도 맑스를 읽지 않은 사람들이 맑스를 극복했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21세기 대학생들이 하는 일이 있다면 오로지 내 일신(一身)이 편안해지기 위한, 더 많은 부를 쌓기 위한 원초적인 싸움 뿐이다. 아는 것은 없이, 마음만 늙어버렸다. 머리는 비었는데 하는 일만은 서른 살 마흔 살 먹은 아저씨와 다를 게 없다. 상아탑은 개뿔, 개나 소나 대학생이냐!

나만은 그리 되지 않기를 소원하는데, 어느새 머리를 채운 건 졸업 후 어떤 색깔의 넥타이를 매야 할까 하는 고민 뿐이다. 조교의 넥타이, 공무원의 넥타이, 연구자의 넥타이, 임상의의 넥타이, 보건의의 넥타이...... 어떤 넥타이가 더 잘 어울릴까 직접 대 보고, 어떤 넥타이가 내 어버이의 희생에 더 큰 보답이 될지 고민한다. 어찌 하면 내 가족이 더 편안해질까, 내 일신이 더 편안해질까 생각하고, 더 맣은 부를 쌓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러다 흠칫 놀라 나는 다시 아이팟을 손에 든다. 몇 번 메뉴를 건너, 80년대의 사계를 장식했던 어떤 경쾌한 노래를 듣는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 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경쾌한 전자음 하나 하나에 눈물도 한 방울씩 흐른다. 노래 가락 속에서 내 어머니가 미싱을 돌리며 벌었던 삼십 몇 만원 쯤의 얇은 월급봉투 - 내 손에 들린 하얗고 작은 기계 하나 살 수 없는 - 를 생각하고, 멋진 브랜드의 넥타이를 매고 수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자칭 독지가" 이건희의 기름낀 얼굴을 생각한다. 내가 어떤 넥타이를 메야 할지는 다음에 고민하기로 하자. 아직은 몇 년인가가 남았고, 지금은 그 "자칭 독지가"가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이 미친 세상(System of a down)을 개혁하기 위한 생각의 연대에 손을 보태는 것이 내 할 일일 테니까...... 미싱이 아무리 잘 돌아가도 결국 삼십 몇 만원 짜리 상품이 되고 마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눈물을 닦기 위한 거대담론에 투신하는 것이 내 의무일 테니까......

나는 대학생이다. 속으로는 추하게 늙어 썩어가는 어떤 대학생들을 닮지 않기 위해서, 미래에 진짜 자본주의자가 되고 진짜 사회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은 일단 넥타이를 풀어 놓는다. 노래가 어느새 두 트랙인가를 넘어갔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후에
내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2006/05/15 01:19 2006/05/1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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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앵벌천국 2006/05/19 22:14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진짜 자본주의자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_+

  2. 예인 2006/05/20 18:34 | PERMALINK | 고치기 |

    진짜 자본주의자란 참 어려운 개념이지요.

    결국 관건은 끝없는 공부에 있는 것 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