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의 표본이었던 공단의 전봇대가 뽑혔단다.(관련기사 ) 동아일보는 이 전봇대를 '규제의 표본'이라 지칭하며 전봇대처럼 규제도 뽑아내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로 또 독자를 경악케 한다. 그런데 이 전봇대가 탁상행정과 책임 떠넘기기 때문에 철거되지 못했다는 지극히 추상적인 분석 외에, 정부의 탁상행정과 기업의 이기심, 정부의 무능과 시장의 실패에 대해 제대로 각잡고 분석한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봇대는 이후로도 정부의 무능을 상징하는 문학적 수사로 적극적으로 이용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일컬어 언론이라 부르는 대신 흔히 선전, 프로파간다라 부른다.

원론적으로, 규제가 사라져야 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제는 기업의 불법 행위, 변칙 행위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금산분리를 예로 들어 보자. 역대 정부가 금산분리 원칙을 그토록 강하게 고수해왔던 이유가 이번 삼성 특검을 통해 면면히 드러나고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차명계좌와 비자금 조성 말이다. 금산분리 폐지는 이런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돈놀이를 훨씬 더 쉽게, 그리고 이전보다도 더 은밀하게 할 수 있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부작용이 이쯤 되면 시장의 효율성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꾸준히도 튀어나오는 감세 정책 또한 그렇다. 이명박 인수위가 내놓은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안을 보자면,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늘어나고, 기업의 생산활동이 늘어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얼핏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세를 줄이면 정부의 활동, 즉 복지정책이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른 사회 불평등의 해소 효과도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손해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감세에는 경제인구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득이다. 그러나 조세와 경제의 공급 측면을 강조한 경제적 정책이 실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는 드물다. 우리는 감세정책의 이득이 손해보다 크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반시장주의가 득세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의 역사에서 시장의 메커니즘보다 효율적인 것은 없었으며,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이 주장하는 반시장주의는 법률, 교육, 의료 등 시장 실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야에만 지극히 한정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시장의 우위를 주장하기 전에, 우리는 시장과 경쟁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면밀히 곱씹어야 한다. 그리고 규제의 폐지를 논하기 전에 우선 지금 논하는 것이 규제인지 규칙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100m 달리기를 할 때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며, 약물을 복용해서는 안 되고, 오직 자신의 다리로 달리기만을 해야 한다. 그 규칙들이 비효율적이라며 모두 폐지해버린다면, 누군가가 각목을 가져와서 다른 선수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뒤 결승선을 통과하더라도 그 승리를 인정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효율은 커녕 손해만 가득한 것이다.

즉 단순히 규제란 나쁜 것이니 모조리 폐지해야 한다며 프로파간다를 벌여서는 안 되고, 그 이득과 손해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준구 선생은 한 칼럼에서 "본질적으로 정책과 관련된 문제에서 정답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바 있다. 한 예로, 영국의 대처리즘은 인플레이션을 잡고 시장의 효율성을 복구한 대신 대규모의 실업 사태를 불러왔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학 원론대로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업률이 정상 수준으로 다시 낮아졌어야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묵과했던 요인들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경제학 원론에 충실한 정책마저도 실제 현실 세계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경제학보다는 기업의 이익 보장에 훨씬 신경을 쓰는 이명박 당선인의 정책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2008/01/22 14:47 2008/01/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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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스트라 2008/01/22 15:53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화..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언뜻 보이는 겉모습에 현혹되는 사람이 그러나..훨씬 더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