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나. 이명박이 압도적인 차이로 정동영을 누르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있나. 예상되었던 결말이다.

선거는 쇼다. 솔직히 이명박이 무슨 공약을 내걸었고, 그 공약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십 분 이십 분이라도 투자해 분석해 본 사람이 이명박 지지자의 1할은 될까. 그렇기 때문에 '근조 대한민국'이니 '대한민국 지못미'니 하는 말들은 단순한 냉소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중우정치(mobocracy) 같은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치를 가십거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발소 아저씨들이 정책이나 정치역학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 없이 이명박을 뽑아 놓았다면 - 슬프지만 그 단어를 꺼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 대중은 지혜롭다. 그래서 그들은 주식 투기니, 연봉 협상이니 하는 일에 집중하지, 자신의 이익이 직결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고 싶어한다. 그들은 이명박을 일종의 영웅, 대리인으로 세워 놓고, 그가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이명박만 뽑아 놓으면 내가 신경쓸 일은 없이 경제가 확, 하고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 대중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늘 그러하듯이. 따라서 이명박 신드롬에는 중우정치 같은 자극적인 말보다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 같은 말이 더 어울린다. 겉으로는 정치와 정책에 관심이 있어 참여정부를 심판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한 표를 행사한 것 처럼 말하지만, 사실 정치와 정책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명박을 뽑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위'야 말로 정치의 최고 경지라는 어떤 철학자의 일갈처럼, 대중들이 모두 정치와 정책에 온 정신을 골몰하고 살 수는 없다. 어떤 정치적 인간들은 "투표를 하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거나,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 이런 결과를 만들었으니 대한민국은 망할 것이다"는 식의 공포를 조성하지만, 그거야 정치적 인간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고. 그들이 진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명박이 대중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공약은 학부생의 경제학 원론 리포트로도 부적합한, D-나 F를 받아 마땅한 졸작이다. 경제학과 교수들이 자문단으로 잔뜩 참여했겠지만, 사공이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가 - 수없는 정치적 이해와 포퓰리즘이 결합한 이 공약들은 이미 버블과 인플레를 막을 수 없는 파탄의 공약에 불과하다. 설령 이 예측이 틀렸더라도, 이 공약은 그야말로 경제의 외형을 키울 뿐이다. 정작 "먹고 살기 힘들다"고 절규하던 서민들의 주머니는 점점 더 얇아질, 그리고 부자들의 주머니를 튼튼하게 만들 공약이라는 것이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경제학이 해결할 수 없는 최대의 난제 중 하나라잖는가.

이것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의 아우라를 보고 이명박을 뽑았을 뿐, 그의 실체는 잘 모른다. 사람들은 대기업 독식 문화나 재벌 일가의 비윤리적 경영 작태에 분노한다. 그러나 이명박이 그것을 혁파하기는커녕 더 부추길 대통령이 되리라는 사실은 짐작하지 못한다(좀 더 정확히는, 짐작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다행히도 '경제'라는 틀이 다른 모든 가치를 지배하고 있진 않다. 공약은 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실제 정책은 느끼고, 경험하고, 와닿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이명박의 아우라가 벗겨지고 그 실체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소위 지식인들이 끝없이 일깨워야 한다.

솔직히 '우파'를 자칭하는 나로서는 "한나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이나 똑같은 신자유주의"라는 식의 정제되지 않은 논리를 편 좌파 지식인들도 현 사태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녕 이런 사태를 의도했다면, 이제 '거 봐라' 하고 팔짱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가 진정 시작이기 때문이다. 괜히 섣부르게 '그러니까 대안은 민주노동당' 하는 식의 얄팍하고 당파적인 주장을 전면에 내세워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주장은 사실 대중들에게 심한 반감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명박이 최후의 수구세력 대통령이 되기를, 그리고 앞으로는 진짜 우파와 좌파가 대립하며 정책을 펼쳐 나가는 제대로 된 정당 정치를 볼 수 있기를 염원하여야 한다. 수구세력의 실체를 벗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좌파 지식인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연대'를 통해서라도 말이다. 대통령 이명박 시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2007/12/20 08:14 2007/12/2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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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 "국민"에게 매우 적절한 대통령의 선출을 진심으로 감축하며. erte의 morelogue.net 에서 트랙백 | 2007/12/20 14:33 | 지우기 |

    다이몬님의 "이명박은 우리의 얼굴이다."에 대한 두번째트랙백.아리망님의 펌글 "MB 지지율 유지의 이유를 제대로 까발린 글"에 대한 트랙백가난뱅이님의 "아직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1. 로망롤랑 2007/12/20 09:03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좋은 글 읽고 갑니다..투표와 권리와 정치적 인간들에 관한 부분 에 가장 눈낄이 가고 동감하는 것은 제가 예인님이 이렇게 표현한 얘기를 하고 싶더랬는데..잘 안되던걸 속시원히 해주시길래 그랬던 같네요..오랜만에 뵙네요,

  2. 아거 2007/12/21 14:04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조중동이 했던 역할을 이제 블로그 군단이 대신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