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나라 뚝배기 공화국에 이런 기사가 떴다고 가정해 보자. 제목은 <무료 수술 봉사자들 입건 논란>. 내용은 영세민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메스사랑'이라는 단체에서 무료로 간단한 상처를 봉합수술해주는 봉사활동을 해 왔는데 이 사람들이 입건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 물론 '메스사랑'이란 단체는 의사들의 단체는 아니고, 옛날에 의사를 하던 할리 씨가 수백만원 수준의 강의료를 받고 자체적으로 1년간 사람들에게 봉합수술법을 가르쳐 조직한 것이다. 할리 씨는 본인이 봉합수술의 대가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를 따르는 지지자도 상당히 많다.

뚝배기 공화국의 이 '황당한' 사례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무료 뜸 봉사자들 입건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쓰여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된다. 심지어 무료 침·뜸 봉사활동도 "불법" 이라거나, 무료로 침 놓고 뜸 떠주던 128명, 경찰서 불려간 까닭은 같은 제목의 기사도 있다. 엄마가 손 따주는 것도 불법? 이라는 제목은 아주 노골적이다. 모두 김남수 씨와 관련된 유사의료인단체 '뜸사랑'을 변호하는 논조의 기사다. '뜸사랑'은 한의사들의 단체는 아니고, 그 산하의 '정통침뜸교육원' 등에서 침사인 김남수 씨가 수백만원 수준의 강의료를 받고 자체적으로 1년간 침구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침구학을 전문의료의 영역으로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지만, 이건 무척이나 '황당한' 일이다. 초점은 '무료로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의료봉사활동'을 했다는 것이고, 의료법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은 어떤 경우에 허가되는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허용되는 경우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비의료인의 의료봉사활동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불법이고, 사실 여기에 의료봉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아주 정치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보호해야 함을 명시한 헌법의 정신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며 전혀 문제가 될 만한 조항이 아니다. 굳이 이런 이상한 논조의 기사가 쓰여지는 까닭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어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막연한 의심까지 품게 만든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 어떤 원리주의자들은 아주 쉽게 밥그릇 지키기로 매도를 하겠지만, 한의협은 이 무료봉사활동이 봉사활동의 외피를 뒤집어쓴 불법 실습 활동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사실 이 입장도 굉장히 방어적으로, 그러니까 '협회 공식입장'이라는 한계상 아주 최소한의 부분만 지적한 것으로 보이지만...... 연합뉴스가 요즘 뒤집어쓴 오명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입장을 전달한 것이 바로 연합뉴스의 기사였던 것 같다. 이러쿵저러쿵 여러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들의 활동은 엄연한 불법이었고, 이 법은 헌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제정된 것이 맞기 때문에 무슨 '논란'같은 말을 붙일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최근 이 사건 등과 관련해 헌법소원이 진행중인 것으로 아는데, 실은 2005년에도 유사한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제기되어 전원재판부 전원 일치 판결로 기각된 바 있다.

사족
갑자기 사소한 동기로 인해 열정적으로 한의학 관련 포스팅을 했는데 이젠 좀 자제해야겠다. 이 블로그가 한의학 블로그도 아니고......

사족 2
제목이 다소 선정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는데 주제를 전달하기에 더 좋은 제목을 끝내 생각해내질 못했다. 주제를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계속 고민중이다.



2010/02/09 02:21 2010/02/09 02:21
 

'바로바로의 중얼중얼'이란 블로그에 실린 글을 반박하면서 생각해보게 된 내용인데 하나의 글로 정리해도 좋을 것 같아 글을 따로 쓰게 되었다. "한국의 한의학, 이대로 좋다"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궁극적으로 보자면, 한약도 처방전을 공개해야 한다. 약의 종류, 용량을 모두 명시하게 되는 것이 좋다. 소비자가 한약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테니 한의사에게도 좋고, 소비자는 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게 되니 소비자에게도 좋다. 그런데 그럴만한 제반사정이 갖춰지질 않았다. 한의사협회는 특히 현행 한약재 유통 및 관리 체계에 대해 지적한다. 누구나 쉽게 한약을 구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인 지식 없이 한약재를 직접 사다가 한약을 만들어 먹어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처방전 공개는 이러한 한약의 오/남용을 가속화할 위험성이 있고, 한의사는 이런 이유로 처방전의 사본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반사정을 고쳐나가기가 쉽지 않다. 인삼은 한약인가, 음식 재료인가? 쉽게 생각하면 한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삼계탕에 들어간 인삼을 한약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인삼은 앞으로 한약으로 정해서 모두 약에 준하는 관리를 받는다"고 제도화한다면? "인삼은 앞으로 한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에 준하는 관리를 받는다"고 제도화한다면? 무리한 논리인 것은 물론이고 설사 강행한다 해도 당장 인삼 재배 농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위의 사례는 차라리 유머러스한 가정에 불과하다. 의료이원화라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의약계에서도 다양한 반발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무리한 반발도 있겠지만 타당한 반대도 많을 것이다. 한약재가 양방의약품(여기에서의 '양방'이란 단어는 다만 편의상의 구분을 위한 것이다)에 준할 만큼 규격화될 수 있는가 하는 지적은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무슨무슨침 협회 하는 식의 유사의료인 단체에서도 한의학의 철저한 제도화에 딴죽을 걸 가능성이 높다. 한의학이 제도상의 미비점을 보완하면 보완할수록 유사의료인들이 끼어들 틈은 좁아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완비된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이것저것 마구 고쳐댈 수 없는 까닭이 이러하다. 이익단체의 간섭도 일부 사이비 집단의 간섭이 아니고서야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할 수 없을 만큼 타당한 근거가 다들 갖춰져 있다. 학술적인 논쟁도 많이 끼어들어 있다. 아마 한의학을 규격화된 의학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부터 시작해 해묵은 논쟁거리가 전부 꺼내어질 것이다. 가치의 충돌도 있다. 알 권리와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하나의 가치는, 다른 관점에서 보는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법의 정신 등과 같은 다른 가치와 충돌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문제에서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한약 처방전 공개를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귀결"이라는 것 정도다. 그 합의가 끝났다면 이제 이익단체의 갈등, 학술적 갈등, 가치의 갈등,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조율해 나가야 할 것이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대강의 조율이 끝났다면 이제 그 공은 입법 집단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건 긴 시간이 필요하고 또 각론에 대한 아주 심도있는,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지점으로, 현직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병아리 수준에 불과한 나는 도저히 끼어들 엄두를 낼 수 없는 지점이다.

현실은 복잡하고 해답은 명쾌하지 않다. 비단 한약 처방전 공개 문제가 특이해서 이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 원래 대부분의 문제가 이렇다. 교조적 태도로 어떤 현실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거친 욕설을 퍼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시끄러운 수레는 비어 있기 마련이다. 현실은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까닭에, 대부분의 경우 쉽게 "이것이 답"이라고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삿대질에 욕설을 퍼붓는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족
그런데 이거 진짜 해결하고 싶은 문제인데, 어떤 돌파구가 있을지 통 감이 안 잡힌다. 진짜 어렵다.

(추가) 사실 글을 쓰면서 많이 고민을 했는데 역시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슨 얘기를 첨언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쓰자면...... 이 문제는 다시 강조하건데 아주 어려운 문제고, 의학과 한의학이 나누어진 의료이원화라는 한국의 실정상 일원화(의학과 한의학을 한 사람의 의사가 맡는 것)의 길을 채택한 중의학 제도와 단순 비교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의사의 업무영역과 한의사의 업무영역은 매우 다르다. 제도적 지향이 다르다. 중요시한 가치도 다르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처방전을 발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좋은 얘기지만, "처방전을 공개하는 중국이 더 선진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노골적이며 의도가 의심되는 비약이다. 부디 기우이길 바라지만, 이 글이 그런 논리의 비약을 위한 근거로 악용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0/02/08 21:13 2010/02/08 21:13
 

진보의 미래 -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지음(2009)
동녘

노무현(1946. 9. 1. ~ 2009. 5. 23.).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 이름은 무척 많은 것들을 상징한다. 그는 경남 출신으로 전남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지역주의 혁파의 한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의 최측근이 경남 - 즉 PK에서 큰 지지도를 보임으로써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또 보혁 이데올로기 갈등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좌파 신자유주의자'로서 진보는 무엇인가, 보수는 무엇인가, 그것을 어떤 틀로 한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원리주의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또 그는 처음부터 검찰과의 대화를 통해 검찰 권력의 변혁을 시도했고, 죽음으로써 정치검찰과 검찰의 형편없는 빨대를 고발했다.

사후에 출판된 책에서도 그는 여전히 화두를 던진다. 진보와 보수는 무엇인가? 규제, 분배, 여러가지 관점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분배'에 대한 시각을 핵심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또한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별명답게 그 용어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진보란 무엇인가? 보수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수로 규정하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교조적 해석에 의거한 것은 아닌가? 보수의 시대, 테크노크라트의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이념을 밀어붙이는 것은 가능한가? 통화주의에 입각한 타당성있는 보고서를 들고 재정정책의 확대를 논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를 정말로 진보적인 대통령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진짜 진보, 진짜 보수는 결국 실용이라는 하나의 단어 (존경해 마지않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쓰시는 실용이라는 단어와는 별 관계가 없다)로 귀결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가 자주 쓰는 용어는 또 '보수의 시대'라는 것이다. "파이를 계속 키워라, 모두 함께 가자니 속도가 늦어지니 대충 도태된 사람들은 버리고 가자"는 구호가 사람들에게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경제적인 효율성 기준으로 판단하는 '보수의 시선'을 사람들이 '선택'한 이상 정치적, 사회적 논의 또한 그 시선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수의 시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의 시대는 가능한가? 보수의 시대에 진보의 전략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

또 이런 화두도 있다. 보수의 시대의 가치관은 옳았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무한한 경쟁, 그리고 성공을 요구하고 있는데, 과연 이렇게 성공을 하면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가 그의 저서 <부유한 노예>에서 던졌던 질문과 그 맥락이 아주 비슷하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도 맞닿아있는 데가 있는데, 이 얘기는 아마 내일 다른 포스팅을 통해 더 자세히 하게 될 것 같다.

화두에는 끝이 없다. 화두는 화두를 낳는다. 노무현이 던진 화두를 통해 독자 자신이 또 여러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강한 노조는 경제를 정말로 침체시키는가? 이 화두는 폴 크루그먼이 <미래를 말하다>에서 던진 화두와 맞닿은 데가 있다. 반대로 한국의 노조운동은 지금 공화국의 정신과 부합하고 있는가? 경영자의 임금은 경영자의 능력과 비례하여 높아지고 있는가, 아니면 엘리트주의같은 어떤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높아지고 있는가? 현실 세계에서 임금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애플과 삼성이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라고 가정했을 때, 여기에 미친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의 몫이 비슷했을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이건희가 없어지면 삼성의 발전은 저해될 것인가? 이건희가 없었다면 삼성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까? 성장과 복지는 배타적인가? 이를 긍정할 때 여기에서 성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수많은 화두들은 결국 끝없이 고민하게 하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태어나는 것은 시민이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 고민할 줄 아는 시민들이다. 이것이 미래의 토양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식을 얻기 위한 탐구, 탐구에 대한 동기 그 자체다.


2010/02/08 01:21 2010/02/08 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