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 '국민소득 균형식'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사람들은 은행에 저금을 하고, 은행은 이 돈을 기업에 빌려주며, 기업은 빌린 돈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 과정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변수가 변하게 되면 다른 변수도 맞물려 변하게 됩니다.

어떤 변수로 인해 이자율이 낮아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기업은 이자가 낮아졌으니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려 투자를 많이 하려고 할 거에요. 하지만 은행이 가지고 있는 돈, 즉 사람들이 은행에 저금한 돈에는 한계가 있고, 은행이 무한정 기업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없습니다. 은행에겐 빌려줄 돈이 충분치 않은데 기업은 돈을 너도나도 빌리려 하고 있으니 이제 어떻게 될까요? 저 유명한 공급-수요의 법칙이 여기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은행은 거만한 태도로 목을 뻣뻣이 세우고 몰려든 기업가들에게 돈을 빌려주며 이자를 다시 높여 받을 겁니다. 이것이 '대부시장의 균형'이며 '균형이자율'에 대한 설명입니다.

어느날, 대한민국의 XX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연아 씨는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세금으로 낼 돈이 많아졌으니 이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저금을 줄이게 되었죠. 당연히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돈의 규모도 줄었고, 이자도 비싸졌습니다. 심지어 여러 현상으로 인해 정부 재정 적자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국채의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금리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고 민간 투자는 더 줄었습니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로, 정부지출에 의한 재정적자가 민간 투자를 감소시키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구축효과로 인해 이자가 비싸졌다는 것이죠. 이자가 비싸진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소비를 조금 줄이고 대신 은행에 더 많은 돈을 저금할 겁니다. 자연히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돈의 규모는 다시 조금 늘어나고, 이자도 다시 조금 싸질 거에요. 즉, 저축액 감소로 인한 이자율 증가와, 이로 인한 저축액 증가로 인한 이자율 감소가 맞물려 일어난다는 겁니다. 복잡한 과정이죠.

단 이 설명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 정부지출의 증가로 인한 재정적자가 민간투자를 구축하는 현상이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부지출의 증가는 아주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의 공익을 증진시키는데 이바지하기 때문에, 그것이 일부 민간투자를 구축시키더라도 사회에는 이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만 민간투자의 구축이라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일 따름입니다. 민간투자의 구축현상이 당시의 사회적 실상에 따라 다른 규모로 체감된다는 것도 인지해야 합니다.

한편 대한민국의 XX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사카 씨는 대기업 회장들을 모아다가 "투자를 안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이에 대기업 회장들은 벌벌 떨면서 투자를 늘리려 했죠. 하지만 오사카 씨가 국민들에게 "저금을 안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지 못하는 이상 은행이 가진 저금액은 변하질 않습니다. 기업이 빌릴 수 있는 돈의 총액도 변하질 않죠. 따라서 투자 자체는 전혀 늘지 않고 대신 이자만 비싸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경제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죠. 단 이 경우에도, 이자가 비싸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저금을 늘리게 된다면, 투자가 일부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요.

이상의 내용을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그래프를 이용해 설명합니다. S는 저축, I는 투자, r은 이자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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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이 이자율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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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이 이자율에 의존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은 이런 분석은 고전학파의 견해를 따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전학파와 케인지언, 시카고학파와 뉴케인지언의 논쟁은 경제학을 꿰뚫는 아주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인데, 이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10/03/09 15:13 2010/03/09 15:13
 

한 해에 국민들이 얻은 총 소득은 그 해의 소비, 투자, 정부지출을 합한 값과 같습니다. 흔히 '국민소득 균형식'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 공식이 여기에서 나오죠.

총소득 = 민간소비 + 기업투자 + 정부지출

사람들은 많이 벌수록 더 많이 씁니다. 당연한 얘기죠. 이 당연한 얘기를 경제학에서는 소비는 가처분소득에 비례해 증가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표현합니다. 가처분소득이란 소득에서 세금(순조세)을 뺀 값을 얘기합니다.

기업은 이자가 비싸질수록 투자를 줄입니다. 행정부가 흔히 "투자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이자율을 낮춘다"고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까닭인데요. 이자가 비싸지면 굳이 그 돈으로 투자를 하지 않고 그냥 은행에 넣어두는 편이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거든요. 반면 이자가 싸지면 돈을 묵혀두고 있어 봐야 돈이 불지 않는데다가, 외부에서 돈을 빌려오기도 그만큼 수월하게 되므로 투자를 더 많이 하게 되겠죠. (보다 정확히는 화폐시장의 수요-공급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굳이 그 부분까지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편, 정부지출이나 세금은 대체로 경제학과 관련없는 외생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좌파적 행정부가 탄생한다면 복지정책이 훌륭해지고 그만큼 세금이 늘어나겠죠. 반면 우파적 행정부가 탄생한다면 복지정책은 없어지고 세금도 줄어들 것입니다. 논외지만 '감세'를 하면서 '복지정책의 확대'를 논하는 모 대통령이 얼마나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네요.

궁극적으로, 정부지출이나 세금이 외적인 요인으로 결정된다고 보면,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소득과 이자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상이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입니다. 거시경제의 모든 요소는 이 수식 속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요.

여기 이상한 나라에 붉은 여왕이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100원을 벌어서 20원을 세금으로 내며 50원을 씁니다. 30원은 자연스럽게 저금을 하게 되겠지요.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00원을 벌어서 = 50원은 소비하고 + 30원은 저금하고 + 20원은 세금으로 내고

그런데 그녀가 낸 20원의 세금은 정부가 걷어 그대로 여러 사업에 씁니다. 복지사업을 하기도 하고, 고속도로 등 여러 기반을 닦기도 하지요. 따라서 이 공식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100원을 벌어서 = 50원은 소비하고 + 30원은 저금하고 + 20원은 정부가 쓰고

한편 은행은 붉은 여왕이 저금한 30원을 기업에 빌려주게 됩니다. 기업은 이 30원을 빌려다가 무엇을 할까요? 투자를 하죠. 투자의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실물자본의 축적'을 의미하는 용어로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기와는 별 관계가 없는 용어입니다. 붉은 여왕이 저축한 30원으로 기업은 투자를 하기 때문에, 따라서 이 공식은 다시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100원을 벌어서 = 50원은 붉은 여왕이 쓰고 + 30원은 기업이 투자를 하고 + 20원은 정부가 쓰고

이렇게 해서 공식이 완성됩니다.


2010/03/08 17:23 2010/03/08 17:23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아, 아쉽네요,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한때 올림픽이면 늘 듣던 해설자의 목소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TV에서 이런 해설을 듣기 힘들어졌다. 이런 문화가 금메달만 자랑스러워하는 1등 지상주의의 폐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뒤이어 많은 지식인들은 금메달 수로 올림픽 국가 순위를 매기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1등 지상주의의 폐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은메달, 동메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만의 특이한 1등 지상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메달 총계를 통해 메달 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최근 훌륭한 블로거인 이정환 님도 "미국과 캐나다 등 대부분 나라들이 전체 메달 수로 순위를 산정"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썼는데, 이는 다소 왜곡된 것이다. 북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금메달 수로 순위를 산정한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가 오히려 독특한 경우인 것이다. 어떤 관점에 따르면, 원래는 미국도 금메달 수로 순위를 산정했으나 메달 총계로 순위를 산정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해지자 산정 방식을 바꾸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무엇이 옳은 방식인가"에 대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실 은메달 100개가 금메달 1개보다 못한 '금메달 우선 산정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이 똑같은 메달 1개의 가치를 갖는 방식이 딱히 더 옳아보이지도 않는다. 올림픽은 경쟁이고, 1등과 2등이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 방식을 적용해도 4등부터 배제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아름다운 치사를 그대로 가져다붙인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선수단 규모가 그대로 순위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올림픽은 틀림없이 '경쟁'이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아사다 마오의 은메달보다 더 빛나는 것이다. 1등이나 2등이나 가치가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멋진 정치적 발언일 뿐이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2등, 3등, 심지어 꼴등이라도 그 가치를 비하할 수는 없고, 그 가치를 비하하는 것은 분명 큰 문제다. 모두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그 나름대로 큰 가치가 있다. 하지만 금메달에 가장 큰 권위를 부여하는 것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올림픽의 아름다운 '경쟁'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모든 부분에 가져다붙이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학생들을 중간고사 성적 순으로 '경쟁' 시킨다거나, 친구들이 서로 누가 연봉을 많이 받느니 하며 '경쟁'한다거나. 이런 엉뚱한 확대해석이 문제일 뿐이지 올림픽을 경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또 올림픽 헌장에는 경기자가 국가를 대표해서 참가하기는 하지만 결국 올림픽 경기는 개인간의 경쟁일 뿐 국가간의 경쟁이 아님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메달 총계를 통해 메달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국가 순위를 정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금메달을 딴 건 김연아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내가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니다. 김연아의 금메달이 빛내는 건 김연아 그 자신이지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나와 같은 문화를 체험하며 자란,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대표해 경쟁에 나선 선수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들이 이긴다고 해서 딱히 우리에게 돌아오는 떡고물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건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 색깔이 바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지 않고 그 경제적인 가치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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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얻은 영광이 '응원'이나 '국가대표' 같은 명목하에 엉뚱한 사람들의 영광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 올림픽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소위 국격(國格)이니 국익(國益)이니 하며 선수들의 영광을 교묘히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몫으로 돌리려드는 소위 '윗분'들의 프로파간다 아닌가 싶다.


2010/03/06 13:33 2010/03/06 13:33